마치 바보역할을 너무 자연스럽게 하고 웃음을 줄 수 있는 개그본능이 탁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개식스 시즌 1부터 감탄했었다. 나중에 사장이라고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사장이 직원한테 따귀를 맞아가며 웃기겠는가? 정말 감탄했다. 기분 나빠하지 않고 프로그램의 성공, 후배 개그맨의 성공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도박 사건은 그의 좋은 이미지를 까먹었지만.. )
김준호씨가 잠깐 TV에 나와 개그맨들을 키우는 제리 맥과이어라고 했었는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살기도 사업을 하기도 바쁜데, 생태계를 만들고 후배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것은 참신했다.
개그계의 시스템 빌더(system builder)로서, 휴머니즘과 비지니스의 밸런스를 잘 맞추려고 노력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기존에 없던 개그맨의 콘텐츠 시장을 잘 관찰하고 어떻게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고 했는지에 대해서 고민한 기사로 읽으면서 참 좋았다. 다른 산업과 비교도 하고. 현실을 깊이 고민한 흔적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가 제시한 것은 공연 콘텐츠, 디지털 콘텐츠, BTL 광고 콘텐츠, 콘텐츠 컨설팅 이다. 사실 엄청 먼가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는 좋은 장점을 잘 모으고, 기존의 것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었다고 할까? 본인이 그 길을 가면서 새로운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그 길을 터주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비지니스를 창출하는 것은 그 동안의 개그계의 좋은 시도라 생각한다.
어록
- 야구는 확률 게임이다. ('머니볼'과 일명 통하는 말이다.)
- 야구장에서는 모든 것들을 한 순간도 놓치면 안 된다. 그게 현장에 앉아 있는 감독의 책임이다.
-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도 끌어 안는다.
- 지도자는 엄한 아버지가 돼야 한다. 자식의 미래는 내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항상 걱정하고 내가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부모라 하는 것은 가슴으로 모든 비난을 받고, 위기에는 자신 뒤에 자식들을 감출 줄 알아야 한다.
- 사회적으로도 '절망은 없다. 하면 된다'는 생각을 퍼뜨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안 된다는 건 없다는 걸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해 나로서도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었다.
- 거짓말을 못하고 늘 직선적이다.
- 감독은 어느 정도 신비스러움 속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 난 이기기 위해 왔지 기분 맞추러 온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 사회는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모른다. 한 번 은혜를 받으면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데 의리가 없다. 그때 인터뷰에서는 그런 것들을 어필하고 싶었다.
생애1397년 1월 31일 3천명의 왜구들이 울주포[2]에 침입하여 군수 이은(李殷) 등을 사로잡아 돌아갔다.[3] 다른 관리들이 모두 도망가 숨은데 비해 이예는 자진해 군수를 따라가 끝까지 보필해 해적들을 감복시켰다. 후일 조선에서 파견한 통신사의 중재로 1397년 2월 이예는 군수와 함께 무사히 조선으로 돌아왔다.
조정에서는 이예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아전의 역(役)을 면제하고 벼슬을 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예는 중인 계층의 아전 신분에서 벗어나 사대부 양반으로서의 전문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된다. 8세 때 해적에게 잡혀간 어머니를 찾기 위해 조정에 청해 1400년 회례사(回禮使) 윤명(尹銘)의 수행원으로 대마도에 갔으나 찾지 못했다.[출처 필요]
처음으로 사절의 책임을 맡은 것은 1401년(태종1년)으로, 보빙사로 일기도에 파견되었다. 1406년 일본 회례관(日本回禮官)으로 파견되어, 납치되었던 남녀 70여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4] 1416년 1월 27일 유구국[5]으로 가서, 왜에 의해 포로가 되었다가 유구국으로 팔려간 백성을 데려오기 위해 유구국으로 파견되었다.[6] 그는 유구국에서 44인을 데리고, 같은 해 7월 23일 귀국하였다. [7]
1418년 4월 24일 태종 18년 대마도 수호 종정무가 사망하자, 조의 사절로 대마도에 파견되어 쌀, 콩, 종이를 부의하여 그의 충성을 후사하였다. 종정무는 치세 기산 도적을 금제하여, 변경을 침범하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특별히 이예를 파견한 것이다. [8]
“ 모르는 사람은 보낼 수 없어서, 이에 그대를 명하여 보내는 것이니, 귀찮다 생각하지 말라. ”
—《세종실록》, 세종8년에 통신사로 일본으로 떠나는 이예에게 임금이 갓과 신을 하사하며 당부하는 말
1443년 세종 25년 왜적이 변방에 도적질하여 사람과 물건을 약탈해 갔으므로 나라에서 사람을 보내서 찾아오려 하니, 이예가 자청하여 대마도 체찰사(對馬島體察使)로 파견되었다. 이것이 마지막 사행(使行)이었다.
28세 나던 1400년에서 71세 나던 1443년까지 44년간 40여회 일본[9]에 임금의 사절로 파견되었다. 그 중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사행(使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13회에 달한다[10].
조선왕조실록에는 44년간의 사행에서 이예가 쇄환해온 조선인 포로의 수가 667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편집] 업적일본인의 조선 입국 허가와 관련한 문인제도와 양국의 교역조건을 규정한 계해약조를 정약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종의 명으로 대장경을 일본에 전달하고 조선에 자전(自轉) 물레방아를 도입하였으며 일본식 상가제도의 시행을 건의하는 등 양국 문화 및 경제의 교류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사탕수수의 재배와 보급, 또한 민간에 의한 광물채취자유화와 이에 대한 과세, 화통 및 완구의 재료를 동철에서 무쇠로 변경, 외국 조선기술의 도입 등을 건의한 바 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무엇이 최선인지 우리만이 알고 있다'는 식의 거만함, CEO와 간부들이 하는 말은 복음처럼 받들어지는 문화, 논쟁을 억누르는 분위기. 이 속에서 '최고 퀄리티를 가진 아름다운 차'에 대한 GM 본래의 철학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유가 뭔지 아나? '최고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카가이'(car guy, 제조·기술인력)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신, 금융지식으로 무장한 '빈카운터'(bean counter)들이 부상했다. 조직 안에서 제조·기술자를 은근히 무시하는 분위기가 생겨났고, 'GM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고, 차도 돈의 한 형태이며, 차를 더 많이 팔아야 돈이 된다'고들 했다. 최상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조직의 하부(대부분 고급 디자인이나 운행감에 대한 이해가 없는)로 내려갔다. 50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조직의 꼭대기에서 제품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비용절감'은 가능할지 몰라도 '매출 증대'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GM의 탁월한 카가이들에게 이건 오래 기다리던 자유선언문 같은 것이었다. 거대 기업에서 진짜 인재들이 어디 있는지 아는가?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급이지만 MBA가 없는, 그래서 경영지식이 풍부한 동료들이 승진하는 사이 점차 존재감이 없어지는, 그런 이들 안에 인재가 숨어 있다. 나는 그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싶었다. 이후 젊은 디자이너들에게서 강력하고 창의적인 디자인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CEO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관료화다. 그것이 조직을 비만에 이르게 한다. 조직 안에는 인사부, 회계부, 법률팀 등 각자의 영역이 있다. 조직이 커지면 각 부서의 책임자들이 자신의 제국을 더 확장하고 싶어한다. 인간 본능이다. GM도 마찬가지였다. 예산책정 시간에 법률팀은 더 많은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하고, 인사팀은 새로운 경영기술과 업무평가방법을 도입하겠다고 말한다. 그때 CEO의 역할은 '지난 20년간 그런 것 없이 잘 살아왔어.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지를 치도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번 뵙고 이야기를 듣고 나서 놀부 창업주이셧던 오진권사장님을 좋아하게 되었다.
겸손하시고, 언제나 손님을 생각하셨던 분이다^^ 서비스업이 무엇인지를 깊이 알게 되었다..
나중에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ㅎㅎ
오진권의 맛있는 성공 중, 좋은 내용만 발췌
1. 장사는 주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하는 것이다.
2. 능력보다 인성이 더 중요하다.
3. 내 꿈은 직원들을 사장 만드는 것.
4. 직원들에게 비전을 심어 주는 사장이 되라
5. 원가를 줄이는 것이 식당 경영의 철칙이라고 ? 절대 NO!
고객을 만족시키기만 하면 별도의 광고를 하지 않아도 장사는 잘되게 되어 있다.
6. 손님이 이기게 하면 장사는 성공한다.
7. 밥을 파는 식당이 아니라 행복한 시간을 파는 식당이 되어야 한다.
8. 장사에서 사업으로, 사업에서 기업으로 꿈을 가져라
* 손님이 바글바글한 식당을 만드는 전략
1. 푸짐하게 퍼줘라.
2. 손님보다 손님 걱정을 더 한다.
3. 외식은 AS가 아니라 BSek
4. 반걸음만 앞서 가면 항상 1등이다.
Fortune Korea 7월호에서 '세컨드 커리어 관리법'에서 나온 좋은 글을 발췌한다.
- 서두칠 전 이화글로텍 회장
리더쉽은 follow me가 아닌 Let's go 라고 정의 했다. 그리고, 그는 아래 의견을 제시했다.
조직원 마음이 불안하면 안되니 절대 사람을 해고하선 안된다.
조직을 안정시킨 후 CEO만 알고 있는 경영 상황을 모든 조직원과 공유하면 한국인 트유의 끼가 살아난다.
리더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세컨드 커리어 관리법으로 네가지를 얘기했다.
1. 첫직장에서 최고가 되라
2. 솔선수범해야 나를 따른다.
3. 누구와도 말이 통하는 인문학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4. 모든 정보를 공개해 신뢰를 쌓아라
- 쌍용차 이재완 부사장
동종업계에서 은퇴 후에도 계속 중용 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과를 내려면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자동차 산업은 제품 개발이 오래 걸린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으로 힘들기 때문에,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세컨드 커리어 관리법으로 세가지를 얘기했다.
1.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라
2.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해라
3. 실패에서 얻는 기회도 있다.
- 전 현민시트템 이화순 사장
세컨드 커리어 관리법으로 세가지를 얘기했다.
1. 실패를 받아들여라
2. 넘치거나 모자란 게 사람이다.
3.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라.
1. 위대한 리더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매일 일들과 문제들을 넘어서서 볼 수 있어야 하며, 구두끈만 보는 책임감에서 넘어서야 한다. 내일과 세상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이 필요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며, 비젼을 향해서 준비되어야 있어야 한다.
2. 깊은(확고한) 신념이 중요하다. 진정한 리더쉽이란 리더의 반짝거리는 빛을 보고 마음이 고정되게 하는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불과도 같다.
3. 자신감은 중요한 리더쉽중 하나이다. 자신감이란, 다른 사람들(부하직원)이 성공할 수 있도록 책임과 신용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들이 주목을 받고 박수를 받는 것을 그늘에서 서 있는 능력을 말한다. 리더는 다른 사람들에게 결정을 이관하고 그들이 일을 하게끔 한다. 이것은 등을 돌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신뢰하고, 책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감있는 리더는 부하들이 성장하지 못할 정도로 큰 그림자를 만들지 안흔ㄴ다.
4. 용기도 중요한 리더쉽이다. 물리적인 용기뿐 아니라 도덕적인 용기를 말한다. 유행을 쫓아가는 용기가 아니라 옳은 것을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홀로 설 수 있는 용기이다. 같이 팀을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반드시 혼자 서야할 때가 온다. 이것은 틀린 것이다. 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5. 진실성도 필요한 리더쉽이다. 진실성이 없이 제대로 리더쉽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진실성을 오래된 개념으로 생각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는 개인적인 덕목(자기신뢰, 자지 절제, 명예, 정직,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덕목은 진실성을 이루는 벽돌이다.
6. 마지막 리더쉽의 요소는 예의다. 이것은 사람들을 공정하고 존중함으로서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덕목을 가지고 있는 확인하려면, 네가 상사에게 대하는 방법을 보면 안다. 또는 당신을 맞설 수 없는 부하직원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안다. (트루만 대통령)
-> (comment) 즉, 관계에 대한 태도를 의미. 사람을 이용하려고 하는가? 귀하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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