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는 급변하는 중국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 도시는 베이징과 함께 중국을 이끌어 가는 곳으로, 중국 최대의 강인 장강(長江) 하구에 있다. 상해는 중국의 상업과 금융중심지로 현대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국제적인 대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표적 관광 코스인 외탄(外灘)의 건물들은 대부분 19세기말 20세기초까지 서구열강의 조계지로 있을 당시 세워진 것으로, 서구의 대표적 건축양식들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방의 파리’라고 불러질 정도이다. 지금 상해는 2010년 ‘세계 박람회’를 개최함으로써 세계의 중심도시로 발돋움 하고 있다.

외탄(外灘)
외탄은 상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중국민주혁명의 선구자인 쑨쭝샨 선생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거리이다.
이곳은 황포강변을 따라 북쪽의 외백도교(外白渡橋)에서 남쪽으로 금릉동로(金陵東路)까지 이어진 1.5km의 산책로를 말한다.
외탄은 또한 ‘만국건축박람회’라 불릴 정도로 거의 모든 서구 건축양식이 도입되었는데, 이는 외탄의 모습중 상징적인 모습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연상이 되도록 만든다.
이곳에 도입된 서양의 건축양식은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등 유럽풍의 스타일 건물이 많이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외탄에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이유는 당시 이 지역을 국제조계지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외탄에 가면 이른 아침부터 거리에서 태극권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고, 밤에는 야간의 조명을 분위기 삼아 데이트 하는 연인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가 있다.

남경로(南京路)
이곳의 상해 중에 최고의 번화가로 꼽히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명동정도의 번화가 이다.
유명쇼핑가인 남경로는 남경동로, 남경중로, 남경서로의 3구간으로 나뉘고, 총 길이는 6km에 이른다. 3구간중에 가장 번화한 곳은 남경동로인데, 이곳에서는 교핑센터와 호텔, 옷가게, 전자제품상가, 레스토랑, 전화국 이외의 각종 상점이 즐비하게 밀집되어 있다.
그만큼 하루에 이동인구만 해도 어마어마해서 혼잡스러운 감이 있는 도시였으나, 최근에는 보행자 도로가 생겨서 많이 안정된 느낌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예원(豫園)
이곳은 상해에 하나 밖에 없는 정원으로 명나라 가정 38년(1599)에 짓기 시작해 명, 만력 5년(1577)완성된 것으로 4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상해 출신의 고급 관리가 된 반윤단이 아버지의 노후를 위해 세운 저택 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증. 개축을 하였다.
전체 면적이 20㎢로 40여개의 누각과, 연못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와건물, 연못, 기암괴석, 동굴 등 볼거리가 많이 있으며, 관광시간은 1시간~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옥불사(玉佛寺)
이곳은 상해의 가장 대표적인 절로 청말에 송대 궁궐을 모방해 지은 1882년 창건된 중국 선종의 명찰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천왕전, 대웅보전이 있고, 옥불은 대웅보전 왼쪽의 회랑 안쪽에 있는 와불당과 옥불루에 안치되어 있는데, 그 상이 매우 매끄럽고 맑아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층은 참배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2층은 불교관련 대현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노신공원(魯迅公園)
이곳은 한국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거사가 있었던 곳으로서 윤봉길의사(1908~1932)가 일본 시리가와 대장을 죽인 곳이다. 1994년에 세워진 윤봉길 의사 의거기념정자는 노신좌상의 오른쪽에 있다.
이 사건은 일본이 상해를 침략한 것과 일본 제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공원에 모여 기념식을 올리고 있을 때(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져 시라가와 대장을 비롯해 일본군 거물들과 외교관등 20명을 응징했던 것으로, 기념물 하나 없이 방치되었다가 1994년 6월에 기념 정자가 건립되었다.
공원을 둘러보는 데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며, 공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노신의 생가
가 있다.


남경은 강소성의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서, 면적이 약 6,500㎢이다.
19세기말 일어난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난 이후 잠시 그들의 수도가 되었으며 소문이 세운 중화민국의 임시정부가 있었던 곳이다. 중국 7대 고도 중의 하나이며 10개 왕조의 수도라는 뜻으로 ‘십조도회(十朝都會)’라 불리기도 했다.
남경은 중국의 4대 과학연구 및 교육도시이며, 중국 동부지역의 교통 요충지이다. 로터리를 중심으로 하늘을 찌를듯한 마천루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고, 각종 편의시설과 5성급 이상의 호텔을 비롯해 대형호텔, 쇼핑센터, 고급레스토랑, 유흥업소들이 밀집되어 있다.
남경대학살기념관(南京大虐殺記念館)
1985년 3월 15일 항일전쟁 승리 40주년 기념으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었으며, 일본군에 의해 학살된(1937년 남경에 침입한 일본군은 30만 명의 중국인을 학살했다) 양민들의 유골이 대량으로 발견된 구덩이를 그대로 전시관의 일부로 사용하고 있고, 사적관의 731부대 전시관은 사진 자료와 함께 자료와 함께 생체 실험을 하는 모형들을 전시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잔인성을 폭로하고 있다.

명효릉(明孝陵)
명효릉은 명을 건국한 명태조 주원장과 마황후의 합장묘로서 600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명나라의 역대 황제의 묘 중 그 규모가 가장 크며, 이곳의 건축물들은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능 맨 뒤의 명루에서는 역대 명나라 황제들의 초상화와 능, 그리고 기타 유적과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이곳에 가면 명효릉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6종류의 동물상이 능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각각 4마리씩 모두 24마리가 배치되어 있는 것이 볼만하다.

중산릉(中山陵)
이곳은 중국 건국의 아버지 손뭉의 묘가 있는 곳으로, 1929년 6월 1일 중국민국정부가 손중산 생전의 희망에 따라 이곳에 그의 유체를 안장했다. 능묘의 높이는 73m이고, 그 면적은 8만㎡에 달한다. 이곳은 남경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항상 참배객들로 복잡하다.

중화문(中華門)
중화문은 명대의 남경에 있던 13개의 성문 중에 가장 규모가 컸던 문으로, 성채라는 표현이 알만큼 그 크기가 거대하다. 원 지정 26년(1366)에 짓기 시작해 명 홍무 19년(1386)에 완공되었다. 중화문은 동서의 길이가 118.5m, 남북128m로 성문은 아치형 통로에 4중의 천근갑문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적병이 쳐들어오면 자동으로 닫히게 되어 있어 매복한 다음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소주는 강소성 동남부의 장강 삼각주에 있으며, 도시 전체가 운하로 이루어져 있어 ‘동양의 베네치아’라고 불려진다. 이곳은 지상의 낙원으로 칭송 받을 정도로 도시 곳곳에 정원과 도시를 종횡으로 관통하는 수로에서 그 정취가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하수구 같은 운하에서는 썩은 물이 악취를 풍기고 미인이 많기로 유명했던 곳인데 미인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반면 도시에 배어 있는 분위기와 서민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정감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최근 소주 교외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유물 중에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직물조각이 함께 발견됨으로써 소주 비단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호구(虎丘)
이곳은 2500년 전에 오나라의 합려가 행궁을 지었던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의 무덤이다. 호구는 사면이 하천으로 둘러싸인 낮은 산으로, 옛날에는 해용산이라고 불렸다.
호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볼거리와 이야기 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는 곳 이기도 하다. 이곳을 관람하는데는 약 1시간~1시간30분 가량이 소요된다.

졸정원(拙正園)
이곳은 소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명나라 1521년에 왕헌신이 만든 것으로 정원의 이름은 ‘한거부’라는 시에서 따온 것이다.
졸정원은 연못이 아주 많은 것이 특징이다. 중원, 동원, 서원 세 부분으로 구분되며, 그 중에서 중원이 가장 볼거리가 많이 있다. 특히 중원의 원향당에서 보는 경치는 일품이다.
공원에서 풍기는 은은한 미를 차분히 감상하려면 1시간~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유원(留園)
유원은 시내중심의 북서쪽에 있으며, 명나라 때인 1525년 서시태란 사람이 만들었다.
그가 관직을 물러난 후 이곳에 동원.서원 2개의 정원을 지었고, 그가 사망한 후에는 서원은 사원으로 사용되고, 동원은 쓰이지 않았다가 유서라는 사람이 수리하여 정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정원의 면적은 3만㎡k로 각기 다른 주제로 구성된 네 개의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사자림(獅子林)
사자림은 원나라의 대표적 정원으로 1342년에 천여선사(天如禪師)가 그의 스승 중봉(中峰)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사자림 이라는 이름은 가산 중에 높은 봉우리의 형상이 마치 사자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사자암과 비슷하게 꾸미기 위해 사자모양의 돌을 많이 이용해 절을 지었는데, 시간이 지나 후에는 이렇듯 정원으로 그 용도가 바뀌었다.
정원의 서쪽에는 폭포수가 떨어지고, 연못 중간은 다리로 연결되어 정자가 있다.

창랑정(창浪亭)
이곳은 소주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이다.
1044년에 시인 소순흠이 관직을 버리고 소주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이곳 경치가 너무 좋아서 자기 돈을 들여서 이곳을 산 후에 못가에 정자도 1채 더 증축했을 정도로 경치가 좋다고 한다. 이곳은 북동쪽에 못을 두르듯이 끼고 있고, 정원 규모는 1ha로 다른 정원에 비하면 크기는 작은 편이나 아담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소주에서 으뜸으로 쳐 주고 있다.

한산사(寒山寺)
6세기에 양나라때 세워진 절로 7세기 당나라의 시인이자 승려인 한산이 머문 뒤부터 한산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절이 유명하게 된 이유는 당나라 때의 시인 장계(張繼)의 ‘풍교야박’이란 시에 등장하면서 부터였는데, 문학의 힘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곳이다.
거의 하루종일 종소리가 들리는 종루. 옛 시인이 들었던 종소리는 사라지고 지금은 1904년에 새롭게 만들어진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항주는 중국의 7대 고도 중에 하나로서 4천년 전 양저문화(良渚文化)로 분류되는 신석기시대를 거쳐, 춘추시대 때는 오.월 양국에 걸쳐 있었으며, 두 나라의 문화를 융합한 독특한 오.월문화(吳越文化)를 형성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抗).’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부터 소주와 함께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 항주이다.
중국인들이 소망은 ‘관직에서 은퇴한 후 항주에 저택을 짓고 소주의 미인과 함께 관주의 음식을 먹고 사는 것’ 이라 할 정도로 이곳은 아름다운 도시이다 .

서호(西湖)
항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항주에 서호가 없다면 항주를 갈 이유가 없다.’ 할 정도로 서호의 아름다움이 주는 비중은 굉장히 크다.
서호는 둘레가 15km이고, 면적이 6.3㎢에 이른다. 이곳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수로 인한 토사가 점차 쌓이면서 수대에 완전한 호수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호수를 가르는 백제,소제라는 두개의 제방에 의해 외호, 악호, 서리호, 남호, 북리호의 5개의 호수로 나뉘는데, 백제는 당나라때 이곳에 지사로 부임한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가 축조했으며, 소제는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축조했다고 한다. 서호에는 10경이라는 곳이 있는데, 곳곳마다 장소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계절과 하루의 특정시기, 주변의 풍치가 조화를 이루었을 때를 말하므로 서호에서 살지 않는 이상 그 진수를 제대로 맛보기란 어렵다고 한다. 이곳의 정취를 보다 더 좋게 관광하려면 시간대를 조금 맞추는 것이 좋은데, 대략 이른 아침이나 한낮, 저녁, 밤 등이 좋다.
10경은 서호의 아름다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들로 ‘단교잔설, 평호추월, 곡원풍하, 소제춘효, 화항관어, 유랑문앵, 삼담인월, 쌍봉삽운, 남병만종, 뇌봉석조’ 등이 있다.

육화탑(六和塔)
북송 개보3년(970)년에 오월왕이 역류현상을 막고자 하는 염원으로 세운 것이다.
탑명은 불교에서 승려들이 수도할 때 지켜야 할 6가지 규약인 ‘六和’를 그대로 따왔다.
탑의 높이는 60m로 겉에서 보면 8각 13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2층으로 나뉘어 있어서
실제로는 8각 7층 석탑이다. 탑 꼭대기에 올라가면 전당강과 주변 경치가 시원스레 보인다. 지금은 중국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장가계와 함께 중국에서 손꼽히는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5악보다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중국인의 황산에 대한 자긍심은 대단하다. 황산은 수려하고 독특한 풍모로 인해 역사 이래 수 많은 시인들에게 사색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해발고도 1천87백73m로 1000m 이상되는 봉우리를 77개나 거느린 웅장한 산으로 진나라 때는 이산으로 불리다가 당나라 때부터 황산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황산이 기송(奇松). 괴석(怪石). 운해(云海). 온천(溫泉)으로 유명한데 그것은 황산의 반정도가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6월 중순부터 1개월간은 장마철이니 이때는 관광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

 

 

 

출처 : http://www.tourcenter.net/sub_html/a_01_05.asp

Posted by 김용환 '김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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